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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총 겨눈 러시아 군인에게 롤렉스 시계를 주자 일어난 일
[인터뷰] 아르멘 멜리키안 "전쟁터의 아이들을 기억해주세요"
2024. 01. 03 (수)

2024년 새해, 안녕하신가요? 조금은 설레고, 들뜬 마음도 들고요. 새로운 시작 앞에 꽤 기분 좋은 마음이 앞섭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안녕하지 못한 마음으로 새해는 맞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볼까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언제 어디서 폭탄이 떨어져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공간에 있다면요.
1월1일 새해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포탄이 오갔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최대 규모 공습을 시작으로, 서로 간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1월 2일 하루에만 약 1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전쟁이니 벌써 2년을 꽉 채워가는 시간, 두 번의 새해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 아니 더 격렬해 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300여 명의 피난민을 탈출시킨 미국인 사업가가 있습니다. 사업차 찾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자, 그곳에 남아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고있는 아르멘 멜리키안 씨인데요. <이태석재단>과의 인연으로 잠시 한국에 방문한 멜리키안 씨를 만나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지금 나의 일상과는 상관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잠깐이나마 함께 생각해 봤으면, 올해는 전쟁이 끝나고 이들이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월1일 새해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포탄이 오갔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최대 규모 공습을 시작으로, 서로 간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1월 2일 하루에만 약 1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전쟁이니 벌써 2년을 꽉 채워가는 시간, 두 번의 새해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 아니 더 격렬해 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300여 명의 피난민을 탈출시킨 미국인 사업가가 있습니다. 사업차 찾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자, 그곳에 남아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고있는 아르멘 멜리키안 씨인데요. <이태석재단>과의 인연으로 잠시 한국에 방문한 멜리키안 씨를 만나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지금 나의 일상과는 상관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잠깐이나마 함께 생각해 봤으면, 올해는 전쟁이 끝나고 이들이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폭격이 시작됐다. 지하 방공호로 모여든 사람들은 더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두운 방공호 깊숙한 곳, 사람들 틈에서 작은 어린 소녀가 보였다. 혼자였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물과 먹을 것을 구해 올 테니 어디 가지 말고 꼭 이곳에 있으라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도 천사가 와서 널 지켜줄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아이의 엄마는 말했다고 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 폭격 소리가 잦아질 때쯤, 아이는 물었다. 당신이 엄마가 말한 천사냐고. 더 이상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방공호 밖에선 물을 손에 쥔 여성이 쓰러져있었다. 그녀가 아이의 엄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공호에 물과 먹을 것을 들고 돌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차에 태워 대피소로 데려갔다.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왔다. 이후 아이가 있던 대피소는 공격을 받아 사라졌다. 이후 아이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다만 안전한 곳에 있길 바랄 뿐."
두어 시간이 지나, 폭격 소리가 잦아질 때쯤, 아이는 물었다. 당신이 엄마가 말한 천사냐고. 더 이상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방공호 밖에선 물을 손에 쥔 여성이 쓰러져있었다. 그녀가 아이의 엄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공호에 물과 먹을 것을 들고 돌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차에 태워 대피소로 데려갔다.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왔다. 이후 아이가 있던 대피소는 공격을 받아 사라졌다. 이후 아이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다만 안전한 곳에 있길 바랄 뿐."
아이의 눈에 천사로 보였던 그의 이름은 아르멘 멜리키안,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곡물 사업을 하던 아르메니아 출신의 미국인이다. 평범한 사업가였던 멜리키안 씨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건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면서다.
그는 그가 살던 지역에 첫 폭격이 시작됐던 2022년 4월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폭격이 시작되고, 곧바로 기차역으로 갔어요. 사람들이 폭격을 피해 지역을 떠나기 위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로 갈 것 같았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기차역 바닥에 어찌할 줄 몰라 앉아있는 노파와 아이들이 있었다. 집이 폭격으로 부서져 갈 곳이 없다는 노파와 그녀의 딸, 두 명의 아들, 그리고 개 한 마리와 두 마리의 고양이. 이들을 자신의 9인승 승합차에 태우고, 서쪽 폴란드 국경을 향해 달렸다. 전쟁이 터지고 그가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밖으로 대피시킨 가족이다.
"폴란드나 슬로바키아 등 주변 국가들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죠. 이들을 집이나 안전한 곳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길 요청했고, 선뜻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후에는 아르마니안 교회가 도와주기도 했고, 대피소가 마련되고 나선 그쪽으로 데려다주기도 했고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알음알음으로 그의 연락처를 전달했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차를 몰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수백㎞를 달려갔다.
그는 그가 살던 지역에 첫 폭격이 시작됐던 2022년 4월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폭격이 시작되고, 곧바로 기차역으로 갔어요. 사람들이 폭격을 피해 지역을 떠나기 위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로 갈 것 같았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기차역 바닥에 어찌할 줄 몰라 앉아있는 노파와 아이들이 있었다. 집이 폭격으로 부서져 갈 곳이 없다는 노파와 그녀의 딸, 두 명의 아들, 그리고 개 한 마리와 두 마리의 고양이. 이들을 자신의 9인승 승합차에 태우고, 서쪽 폴란드 국경을 향해 달렸다. 전쟁이 터지고 그가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밖으로 대피시킨 가족이다.
"폴란드나 슬로바키아 등 주변 국가들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죠. 이들을 집이나 안전한 곳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길 요청했고, 선뜻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후에는 아르마니안 교회가 도와주기도 했고, 대피소가 마련되고 나선 그쪽으로 데려다주기도 했고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알음알음으로 그의 연락처를 전달했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차를 몰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수백㎞를 달려갔다.
"300여 명의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탈출…
러시아 군인이 말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시 만나면 그때는 살려주지 않겠다고요."
러시아 군인이 말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시 만나면 그때는 살려주지 않겠다고요."
"한번은 국경을 지나려는데 러시아 군인이 잡더라고요. 총을 겨누며 너는 지나갈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함께 갈 수는 없으니 이들을 돌려보내라고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경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이유는, 이들이 있어야 우크라이나가 그 지역을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인질, 방패막이로 쓰려는 거죠. 그러니 마을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했어요.
이들이 이렇게까지 막는다는 건 곧 공격이 있을 거란 이야기예요. 이 사람들을 돌려보낸다는 건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주머니를 뒤져 있는 돈을 다 꺼냈더니 몇십 달러가 나왔어요. 돈을 줄 테니 보내달라고 물어봤는데, 제 손목의 가짜 롤렉스 시계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얼른 줬죠.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살려주지 않겠다면서 통과시켜 줬어요."
그렇게 국경을 통과했지만, 그는 누군지도 모를,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의 연락을 받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폴란드 국경까지는 왕복 1500㎞에 달하는 거리, 이를 수십번 오가며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총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적도, 드론의 공격을 받아 폭발물이 차를 관통해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피난민을 태워 전쟁터와 국경을 오가길 수십 차례, 그가 대피시킨 피난민은 300여 명이 달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막는다는 건 곧 공격이 있을 거란 이야기예요. 이 사람들을 돌려보낸다는 건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주머니를 뒤져 있는 돈을 다 꺼냈더니 몇십 달러가 나왔어요. 돈을 줄 테니 보내달라고 물어봤는데, 제 손목의 가짜 롤렉스 시계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얼른 줬죠.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살려주지 않겠다면서 통과시켜 줬어요."
그렇게 국경을 통과했지만, 그는 누군지도 모를,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의 연락을 받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폴란드 국경까지는 왕복 1500㎞에 달하는 거리, 이를 수십번 오가며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총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적도, 드론의 공격을 받아 폭발물이 차를 관통해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피난민을 태워 전쟁터와 국경을 오가길 수십 차례, 그가 대피시킨 피난민은 300여 명이 달한다.

사진=이태석재단
단지 사업차 머물렀던 우크라이나다. 미국에는 두 명의 자녀와 부인이 있다. 전쟁이 터지면 외국인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텐데, 그는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못했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전쟁 직후, 아내에게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있는 걸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고요. 그 상황에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전 우크라이나 사람이 아니니까 유럽의 다른 국가나 우크라이나 안에서 여러 지역 간 이동이 가능했거든요.
이들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부터 제 삶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사실 매 순간 두려워요. 공습이 시작되면 내일은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그곳으로 가게 돼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그곳에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 없으니까요.
러시아의 공격은 지금도 더 심해지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매일 조금씩 다가오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더 잔인하고 과격해지고 있고요. 모든 것을 다 불태우고 있고요. 인구가 20만, 30만 명 이상 되는 도시는 모두 사라지고 없어요. 지난 3개월 동안 죽은 사람들이, 전쟁 직후 1년간보다 더 많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전쟁 직후, 아내에게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있는 걸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고요. 그 상황에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전 우크라이나 사람이 아니니까 유럽의 다른 국가나 우크라이나 안에서 여러 지역 간 이동이 가능했거든요.
이들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부터 제 삶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사실 매 순간 두려워요. 공습이 시작되면 내일은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그곳으로 가게 돼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그곳에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 없으니까요.
러시아의 공격은 지금도 더 심해지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매일 조금씩 다가오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더 잔인하고 과격해지고 있고요. 모든 것을 다 불태우고 있고요. 인구가 20만, 30만 명 이상 되는 도시는 모두 사라지고 없어요. 지난 3개월 동안 죽은 사람들이, 전쟁 직후 1년간보다 더 많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러시아의 공격은 더 과격해지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어요.
지난 3개월 동안 죽어간 사람들이 전쟁 직후 1년보다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지난 3개월 동안 죽어간 사람들이 전쟁 직후 1년보다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12월 9일 열린 <이태석재단>의 '리더십스쿨' 특강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영화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억하고, 뜻을 잇기 위해 설립된 <이태석재단>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 어린이 긴급구호 캠페인'을 시작, 2022년 3월부터 멜리키안 씨를 지원하고 있다. 전쟁 직후 멜리키안 씨가 피난민을 전쟁터에서 탈출시키고 있다는 사연을 들으면서다. <이태석재단>은 방탄복과 방탄모, 승합차 등을 지원한 데 이어 지난해 7월에는 구진성 리더십스쿨 교장이 직접 우크라이나를 찾아가 의료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4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번에 수용해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노약자와 아이들을 위한 의료품, 생필품 등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다친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고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4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번에 수용해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노약자와 아이들을 위한 의료품, 생필품 등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다친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고요."

사진=이태석재단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2년, 다음달이면 3년차에 접어든다.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당장 언제 또다시 공습이 시작될 지 모르지만, 오늘의 끼니를 위해 먹을 것을 찾고, 내일의 삶을 위해 땅에 씨를 뿌리고, 그러는 사이 하루하루 아이들은 자란다.
당장 내일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그는 전쟁 그 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인 그는 언제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릴지, 폭탄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일상과 그 속에서 성장한 어린이들의 삶을 경험한 바 있다. 구소련 붕괴 이후,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파키스탄, 터키 등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 오랜 시간 분쟁을 겪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재활센터를 만들려고 해요. 많은 아이들이 트라우마에 힘들어하고 있어요. 항상 불안에 떨고 잠도 잘 못자고요. 또 부모를 잃은 많은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보내지고 있어요. 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요.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부모가 살아있더라도 아이를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시스템이 없으니까요. 내 꿈이라면 아이들을 부모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지낼 수 있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더라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센터를 마련하는 겁니다. 준비하고 있어요."
당장 내일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그는 전쟁 그 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인 그는 언제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릴지, 폭탄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일상과 그 속에서 성장한 어린이들의 삶을 경험한 바 있다. 구소련 붕괴 이후,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파키스탄, 터키 등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 오랜 시간 분쟁을 겪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재활센터를 만들려고 해요. 많은 아이들이 트라우마에 힘들어하고 있어요. 항상 불안에 떨고 잠도 잘 못자고요. 또 부모를 잃은 많은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보내지고 있어요. 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요.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부모가 살아있더라도 아이를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시스템이 없으니까요. 내 꿈이라면 아이들을 부모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지낼 수 있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더라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센터를 마련하는 겁니다. 준비하고 있어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재활센터가 필요해요.
아이들의,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해서요"
아이들의,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해서요"
"전쟁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공격적으로 자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이 아이들이 자라 또 다른 나쁜 미래가 발생할 수 있어요. 가족 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전쟁 속에서 보살핌 없이 자라난다면 어떤 어른이 될까요? 이런 아이들이 성인이 된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어떨까요? 아이들을 위한 보살핌이 필요해요. 미래를 위해서요."
이태석재단은 그를 도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한 센터 설립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강연을 마친 멜리키안 씨는 지난달인 12월 13일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러시아는 12월29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했다.
이태석재단은 그를 도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한 센터 설립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강연을 마친 멜리키안 씨는 지난달인 12월 13일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러시아는 12월29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했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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